[WOMAN] 그 많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LOVBOD  ·  04.01.2021

  아는 독립운동가 세 명만 말해봐! 3, 2, 1・・・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로부터 딱 일주일 전이었던 3월 1일 삼일절. 독립운동 서훈자 1만 6400여 명 중 여성은 490여 명으로 단 3% 불과하다(2019년 말)는 기사를 접하고 대뜸 친구들에게 3초 안에 세 명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다. 다섯은 쉬지도 않고 '김구, 신채호, 윤봉길, 안창호, 안중근, 한용운'의 이름을 댔고, 일곱 중 두 명의 입에서만 '유관순'의 이름이 나왔다. 앞선 이들과 유관순의 차이가 있다면 딱 한 가지, '여성' 독립운동가라는 점이다.

학생 시절 배우기로는 분명 102년 전 한국의 크고 작은 거리들이 모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이들로 가득했다는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떠올리면 유관순에 그칠까. 그렇다고 여성 독립운동가가 그 혼자뿐이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전 유관순연구소장이었던 박충순은 "당시 여성들은 신분을 감추고 활동했고 여성이기에 비밀리에 심부름과 연락을 전달하는 일들을 해서 주도적인 일들이 적었다. 따라서 객관화할 증빙 자료가 없고 후손이 증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잊혀진 여성들을 호명하고 그림으로 추모하는 일

당시 시대가 그러했듯 한국의 독립운동 사는 남성 위주로 기록되어있다. 3.1 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동료 간호사들과 '간우회'를 조직하고 만세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던 간호사 '박자혜'는 의열단의 폭파 거사를 돕는 등의 활동을 했으나 '신채호의 아내'로만 소개되어왔다. 영화 <밀정>에서 안옥윤(전지현 역)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은 3.1 운동 참여, 조선 총독(사이토 마코토)의 암살을 기도하는 등의 중요 임무를 맡았으나 자신의 이름 석 자 대신 '여자 안중근'으로만 불려 왔다. 그래서였을까 '한국 최초의 여자 조종사'로 알려져 있던 '권기옥'은 자신을 따라다니던 '최초의 여자 - '라는 수식어를 불편해했다고 한다. 권기옥에게 조종사라는 직업은 단지 조선 총독부를 폭파하기 위한 독립운동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32년 상해 전투에서 전투기를 몰고 일본군에 기총소사를 퍼붓는 독립운동가였다.




"유관순만큼 훌륭했던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역사가 충분히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잊히고 묻힌 허스토리(Herstory)를
최대한 살려내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 그렇게 잊혀진 이들에게 얼굴을 찾아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화가가 있다. 바로 '윤석남'이다. 올해로 83세가 된 윤석남은 가정주부로의 삶을 살다 나이 마흔에 작가가 됐다. 주로 서양화 어법으로만 작업을 해오던 윤석남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여성의 시선을 드러내는 동양 채색화를 그리고자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시대 초상화들을 찾아보다가 여성의 초상은 이름도 붙어있지 않은 채 단 두 점만 남아있는 것을 본 뒤 여성들을 찾아 그리기 시작했다.


"그거 아세요?
우리나라 전통화 중에 여성 초상화는 거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자신을 그린 사람도 없었지만,
여성을 그려준 사람들도 없어요.
저는 그게 좀 억울하더라고요.
초상화는 그냥 초상화가 아니에요.
그 사람이 살아온 여정을 표현하는 거죠."



그렇게 윤석남은 기록되지 않아 기억할 수 없었던 여성 독립운동가 100명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돌아오는 4월 3일까지 종로 학고재 갤러리학고재 온라인에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라는 전시를 통해 14명(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을 부활시켰다. 전시와 동시에 김이경 작가와 함께 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책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전시와 책을 통해 독립운동에 있어 남성의 '조력자' 역할에 그치지 않는, 각자가 가진 사명감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했던 '투쟁가'로서의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백마 탄 왕자님 말고, '백마 탄 명시 장군'을 아시나요?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김명시'였다. 그의 이름을 생전 처음 들어서였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그의 초상에만 '말'이 함께 그려져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도록에서 설명을 찾아 읽기도 전에 무장투쟁에 앞섰던 '장군'이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었고, 그의 날카로운 눈매에서 그가 품은 기강과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날카로워 어딘가 섬찟했던 그의 눈과 얼굴 왼켠에는 '(・・・) 온몸이 혁명에 젖었고 혁명 그것인 듯이 대담해 보였다.(・・・) 싸움이란, 혁명에 앞장서 싸우는 것이란 진실로 저렇게 비참하고도 신명나는 일이라고 고개를 숙이며 일어나서 나왔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는데, 이를 읽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혁명을 주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혁명 그 자체가 된 여성, 그것을 '신명나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여성이라니. 얼마나 단단한 사람일지 타임머신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가 그를 만나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김명시는 '조선의 잔 다르크', '백마 탄 여전사'로 불렸다.

언젠가 신라의 장보고를 풀어낸 드라마 해신(2004)에서 자유자재로 무술을 하는 여성 호위무사 백하진(김아중 역)에게 홀딱 빠진 이후부터 온갖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성 장군을 마주하길 기대하곤 했다. 당시 시대상을 알면서도 늘 그 부재에 의문을 품었는데, 여성 장군이 없었던 게 아니라 없었던 건 기록일 뿐이었다는 것이 어딘가 슬펐다. 당시 시대 풍토에도 불구하고 장군으로 활약을 펼친 여성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사실에 왜인지 모를 뿌듯함이 차오르기도 했다. 동시에 이런 인물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건지 먹먹했다. 만약 김명시 장군을 학창 시절에 배웠으면 조금 더 재미있게 한국사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단 그뿐 아니라 전시와 책에 등장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유관순 열사 외에도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존재했다'는 것 정도만이라도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Call them by their name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스러져 간 한국 여성들 이야기입니다.
정말 이름 없는 숱한 여성들의 혼을
제 화폭으로 끄집어내고 싶습니다."



윤석남은 자신의 힘이 다할 때까지 여성 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누군가의 아내 혹은 여자 ○○○, 한국의 ☐☐☐' 대신 그들의 이름 석 자대로 부르고,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있기 전에, 제 아무리 훌륭한 이라도 타인에게 비유되기 이전에도 그들은 그들 자체로 존재해왔으니까.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및 참고자료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81세 화가 윤석남이 묻는다 / 이은주 / 중앙일보 / 2021.02.21
누구지? 이 형형한 눈빛은?... 초상으로 되살린 여성 독립투사들 / 이승은 / YTN / 2021.03.01
[세상을 보며] '조선의 잔 다르크' 김명시를 아시나요? / 이준희(사회부장) / 경남신문 / 2020.11.03
여성독립운동가···초상화로 부활하다 / 오옥순 / KTV 국민방송 / 2021.03.08
이 땅의 여성을 그렸다, 진짜 나를 만나고 싶었다 / 이은주 / 중앙일보 / 2018.10.01
"이 여자들, 목숨 걸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김종훈 / 오마이뉴스 / 2021.02.28
[이화순의 아트&컬처] 82세 거장 ‘윤석남’이 들려주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삶 / 이화순 / 시사뉴스 / 2021.02.18
최초 여성 비행사 "총독부 폭파가 목표" / 권영지 / 단비뉴스 / 2019.08.09









러브레터 구독하기

매주, 몸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러브바드의 뉴스레터를 구독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