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O] 정혈 용품 원정대
LOVBOD  ·  03.16.2021

  정혈 용품 원정대를 소개합니다!

N년 동안의 정혈 기간을 되짚어보니 브라만큼은 아니지만 지금의 정혈 용품을 만나기까지 꽤 많이 돌아온 것 같다. 아래에 적힌 나의 원정과 시기나 용품이 다를 수도,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이 지금까지 당신의 정혈 인생을 돌이켜보는 시간임과 동시에 조금 덜 고통스럽고 쾌적한 앞으로의 정혈 인생을 선택할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트랙 위를 달리는 일

1) 초경파티; 어서 와, 진정한 여자는 처음이지?
초경, 몇 년 전이었더라. 막연히 ‘피’라는 이유로 두려움을 느꼈던 날이자 동시에 ‘올 것이 왔구나’ 싶은 덤덤함이 공존했던 날. 처음 ‘피를 본 날’(지금에야 당연하게 정혈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나에게는 너무 당황스러운 해프닝에 불과했다)은 수학 학원에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경시대회 문제를 풀고 있는데 그분이 오신 것이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대충 처리를 하고 집에 갔더니 부모님이 파티를 열어주셨다. 그래 봤자 엄마, 아빠, 나 셋의 조촐한 파티였지만 피자를 먹고 케이크를 불고 꽃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내게 ‘진짜 여자가 된 거야’라는 말과 함께 정혈대를 건네주었고, 나는 사용법을 배웠다.

엄마가 말 한 ‘진정한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정혈(고작 피)로 인해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면, 그 전까지의 나는 무엇이었던 걸까. 우리는 정혈은 여성이 겪는 일임은 분명 하나, 모든 여성들이 하는 것은 아니며, 또 정혈하는 여성은 아이를 가지지 않기도 하고 또 가질 수 없기도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할머니도 어린 엄마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만약 내가 그날 엄마로부터 정혈대만이 아닌 면 정혈대(면 생리대)나 탐폰, 정혈컵 등을 받았다면 이 N년 간의 지긋지긋한 여정은 몇 년, 아니 몇 달 안에 끝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분명히 돈을 절약했을 수도, 환경을 덜 오염시켰을 수도 있었겠다.

돌아보면 저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나의 정혈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예민한 날에는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해? 그날이야? 생리해” 소리를 들었으니까. 심지어 정혈하지 않은 날 들은 횟수가 더 많았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빈번히 오가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아직 초경을 하지 않은 이가 있다면, 온 주변으로부터 마음껏 초경을 축하받으면 좋겠다. 대신 축하의 의미는 조금 바뀌어야 하겠다. 진정한 여자 됨을 축하하는 대신, 나와 나의 몸이 원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시기가 왔음을 축하받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2) 가장 보편적인 정혈대(생리대), 일회용 패드
초경하던 날 엄마로부터 받은 정혈대를 시작으로 정혈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흐르는 피와 핏덩이를 해결하는 건 오직 정혈대 밖에 없는 줄 알았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 더욱 싫게만 느껴졌다.

일회용 패드를 사용하던 10년은 미친 듯 괴로웠다. 만만치 않은 가격과 부피는 수많은 단점 중 일부에 불과했다.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발암물질 파동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혈대의 유해성분은 정혈통(생리통)에도 영향을 미쳤고, 건강에도 역시 치명적이었다. 성분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당시 우리에게 보편화된 건 패드 뿐이었기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만 파동을 계기로 다른 정혈 용품을 시도하는 이들이 늘었다. 아직까지 패드를 사용하는 이들은 여전히 안정성을 의심하며 사용 중이라고 했다.

또 정혈은 자궁(포궁) 내막이 헐어져 나오는 현상이다 보니, 피와 함께 내부 조직이 덩어리의 형태로 배출되기도 한다. 이는 흔히 ‘뜨끈한 굴을 낳는 느낌’이라고 부르는데, 이 불쾌함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에 더운 여름철이라면 게임은 끝난다. 이미 피와 땀으로 충분히 축축해진 패드가 온도, 습기의 영향까지 받아 쉬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그 뿐이랴, 앉을 때나 걸을 때나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때 발생하는 사소한 생활 마찰까지 더해지면 예민한 부위, 예민한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기에도 딱 좋은 환경을 만든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던 과거의 나는 여름이면 며칠이고 지옥에서 사는 기분이었다.


3) 오버나이트는 접착력이 생명입니다. 암기하세요.
지금이야 조금 나아졌지만 어릴 적부터 내게는 범상치 않은 잠버릇이 있었다. 분명 베개에 머리를 두고 잤음에도 아침에 일어나 보면 머리와 발의 위치 180도 바뀌어 있다거나(발이 베개를 베고 있는 미스테리), 가끔 엄마와 잘 때엔 엄마를 때리기까지 했다고(움직임이 격했을 뿐, 지극히 엄마 관점의 아주 과장된 이야기라고 믿는다) 한다.

이렇게 수면 중 움직임이 많은 내가 정혈을 시작했으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첫날과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매번 침구에 피가 묻었다. 오버나이트를 사용하라고? 국내에 판매되는 슈퍼 오버나이트란 슈퍼 오버나이트 중에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없을 거라 장담한다. 그렇지만 각 회사마다 사이즈, 패드의 굴곡이 달라 나와 맞는 걸 찾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고, 혹시라도 빈약한 접착력이 패드의 길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제품을 고른 날은 역시 파국, 아니 ‘피국’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자는 동안 혈이 엉덩이 골을 따라 내려가는 동시에 약한 접착력이 내 몸짓을 이기지 못해 이리저리 접혔다. 아침에 일어나 제구실 한 번 못한 채 멋대로 구겨진 오버나이트를 보면 배신감이 밀려왔다. 고작 몇 시간이면 갈아치워야 하는 천쪼가리 하나가 얼마인지 머릿속으로 계산한 날에는 진지하게 '요실금 팬티'를 사서 입고 자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물론 입는 정혈대(생리대 혹은 피팬티, 정혈팬티)의 존재를 몰랐던 시절에의 이야기다.

4) 내 인생을 구하러 온 나의 구원자, 탐폰
‘내 세상은 널 알기 전과 후로 나뉘어.’ 언젠가 모 가수가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내 정혈 인생은 탐폰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언제, 어떻게, 왜 탐폰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아마 학교 드럭스토어에서의 프로모션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쭈욱 탐폰만 사용하고 있다.



* 성경험이 없는데 탐폰을 사용해도 되나요?

혹시 처녀막으로 잘못 알려진 질막(질주름/질근육)이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계신가요?

질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부위로, 굉장히 유연하고 탄력적인 조직입니다. 사람마다 질막이 질기거나 부드러울 수도, 처음부터 그 흔적만 있거나, 아주 작은 구멍만 있거나, 아예 질 입구를 폐쇄하고 있기도 하고, 또 자전거나 수영 등으로 손상이 갈 수도 있습니다. 성기나 손가락 등을 삽입한 이후에도 찢어지지 않을 수도, 찢어졌다가 아물 수도 있습니다. 또 첫 경험에 출혈이 있는 여성은 50%도 안 된다는 연구 결과까지 존재합니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우리의 질은 성적 만족을 위한 삽입과 임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눈코입이나 손가락, 심장, 폐와 같은 '단지 신체의 일부'라는 점을 꼭 기억해주세요. 탐폰의 흡수체 대신 혈을 그대로 받아내는 정혈컵(생리컵/월경컵)도 마찬가지랍니다. 왜곡된 순결에 대한 인식 때문에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을 선택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우리의 몸, 우리가 결정합시다!





몇 번의 시행착오 후 탐폰의 편리함을 온몸으로 느꼈던 당시의 기분은 뭐랄까, 마치 초등 고학년 내내 3.14라는 소수점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다 중등 수학에서 π를 발견했을 때의 허탈감의 100배 정도였달까. 대상 없는 약간의 원망은 덤. 넌 대체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왜 아무도 이 좋은 걸 진작 이걸 알려주지 않았던 거야!



* 잠깐! 본격 탐폰 찬양 전에 알아보는 유의사항

1. 청결 : 손으로 질에 삽입하는 형태, 세균 감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손을 깨끗하게 씻기
2. 질 건조증 유발 가능성 : 흡수체를 질에 삽입하기 때문에 피 외 수분까지 함께 흡수하기 때문에 2~3시간 주기로 교체
3. 독성쇼크증후군(TSS) 발생 가능성 : 8시간 이상 착용한다면 쇼크가 발생할 수 있음(그러나 감기약에도 부작용은 있다는 점!)
4. 수영, 물놀이가 끝나고 물에서 나왔을 때 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에 즉시 교체





탐폰 혁명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 뒤 몇 년째 탐폰 회사 영업 직원이라도 된 양 탐폰을 찬양하고 있다. 그 멘트에는 피부의 보송함, 트러블 없음, 부피 최소화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위를 가장 솔깃하게 만드는 것은 ‘응아를 닦을 때 응아만 닦인다’는 것. 이 부분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활자로 영원히 남을 이 공간에 응밍아웃을 하기가 나조차도 민망하다는 것을 알아주시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가장 환호한 부분이었다. 그것이 정혈 중 우리가 겪어온 지나치게 익숙해진 불편이라는 점도 탐폰을 사용하며 알게 되었다.

또 탐폰을 정혈 기간 냄새를 유발하는 건 실제 내 몸에서 나온 피 때문이 아니라 흡수체의 유해성분 때문이라는 것. 후에 이 사실을 알고는 얼마나 분노했는지. 그럼 그렇지. 고작 2~3시간 밖에 안 된 깨끗한 피에서 그런 냄새가 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 탐폰, 잘 때엔 어떡하냐고요?

저는 정혈할 때면 꽤 오래 체화된 불안감(혹시 새는 건 아닐까)으로 약 3시간 주기로 깨는 예민한 인간입니다. 제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6시간 정도이니 새벽에 한 번 일어나서 새 탐폰으로 교체하고 다시 잠에 들어요. 참 쉽죠? 그렇지만 개인의 생활패턴에 맞게 사용하시길 추천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장시간 착용은 질건조증이나 질경련 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건강이 1순위!







5) 아직 두 발 남았다, 정혈컵(생리컵/월경컵)과 미레나 시술
이 원정은 언제쯤 끝나려나. 완경이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우선 다가오는 월급날에는 피팬티/정혈팬티를 구매해볼 예정이다. 또 멀지 않은 미래에 정혈컵이나 미레나 시술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사실 당장이라도 정혈컵에 도전해보고 싶다가도, 질 입구까지의 길이를 재기 위해 정혈 중 질에 손을 넣는다는 게, 아니 정확히는 ‘피를 보는 것이’ 꺼려진다. (이건 순전히 내가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피를 싫어하는, 아직도 주사 맞을 때 눈을 질끈 감고 바늘만 보고도 움찔거리는 나이만 어른인 인간이러서 그렇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아무렴 어때, 내 몸인데 싶기도 하다. 아마 이대로라면 내년 즈음에는 정혈컵을 구매하지 않을까.

미레나는 자궁(포궁)에 삽입하는 작은 장치로 산부인과 의사들도 많이 하는 시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임 방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생리통 등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많이 쓰이고, 외국에서는 정혈 때문에 시술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내게는 미레나 2년차인 미국인 친구가 있고, 한국에서도 점점 정혈 때문에 시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미레나는 비영구적이고 원할 때 빼낼 수 있는 장치이지만 무언가를 삽입한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과 시술로 인한 부작용을 배제하고 생각해볼 수는 없기에, 또 정혈 때문에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기에 망설여진다. 특히 실제 시술을 받기 전까지는 내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이 생리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는 무월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조금만 덜 아팠으면, 조금만 덜 찝찝했으면, 조금만 덜 예민했으면 하는 것들 뿐이다.



  지긋지긋해도 원정은 계속된다

외에도 사용해보지는 않아 아쉽게 등장하지 못한 면 생리대(면 정혈대)도, 흡수체에 따라 종류가 다양한 탐폰, 모양과 고리에 따라 나뉘는 정혈컵 등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용품이 있는데 왜 나는 정혈대의 존재만 알았던 걸까 조금은 속상하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아직 도전할 선택지가 꽤 남았다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 물론 내 통장은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여태 미워하기만 했던 내 몸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른으로서 여자아이들의 초경날 딱 하루를 축하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정혈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정혈하는 이들의 수만큼의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정혈이 시작돼서 네 몸을 소중히 여겨야한다는 말 대신 그것과 관계없이 너는 원래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건네야 하지 않을까.

피 흘리는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용품과 과정을 선택할 수 있기를, 조금 더 그 시기를 잘 보낼 수 있기를 응원한다. 니나 브로크만과 엘렌 스퇴켄 달의 『질의 응답』에서 읽은 구절로 정혈 원정대 글을 마무리한다. 정혈은 그저 다달이 피를 좀 잃는 일일 뿐이다.






출처 및 참고자료

Does it hurt when the hyem breaks? / Louise Morales-Brown on / Medical News Today / 2020.11.08
생리대 97% 발암물질 검출… 해외직구도 안심 못해 / 안소영 / 조선비즈 /2020.10.02
처녀막이 아니라 질주름이다 / 윤정원(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 시사IN / 2017.08.31
‘처녀막’ 아닌 ‘질막’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 곽상아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 2017.09.04
불편하나 따듯한, 나 그리고 우리의 피 / 이주현 / 한겨레 / 2018.02.08
니나 브로크만, 엘렌 스퇴켄 달, 『질의 응답』, 열린책들, 2019
성시경-너의 모든 순간(별에서 온 그대 OST) 가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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