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PO] 브라 원정대 - 1편
LOVBOD  ·  03.03.2021

  부캐 열차, 더 늦기 전에 탑승할게요

2020년은 코로나 시대이자 부캐의 전성시대였다. 최강 경력직 신입 유산슬이 부캐 시대에 불을 지피고 둘째 이모 김다비가 대(大)사랑으로 뜨끈히 달군 자리에 싹쓰리와 환불 원정대가 등장, 최근 그 화려한 막을 내렸다. 환불 원정대가 음악과 열정, 그들의 연대를 대중의 사랑으로 환불받은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던 개그맨 박명수의 말을 떠올리며 부캐의 해로부터 지금보다 더 멀어지기 전에 나의 부캐를 소개하고 싶다.

사무실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나의 오천칠십육 가지 부캐 중 하나인 마케터다. 마케터 외에 오천육십구 개의 부캐가 있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브라 원정대’로서의 나다. 나는 신체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어렸을 때부터 꽉 맞는 옷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창 스키니진이 유행일 때에는 매일 꾸역꾸역 입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워했다.

각설하고 이 글은 갑갑한 걸 싫어하는 나의 더 편한 브라를 찾기 위한, 아니 브라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니까 더 편한 브라를 찾을 원정 따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향한 나의 여정이다. N년 간의 브라 인생을 하나에 옮기기엔 그 양이 방대하기에 두 편으로 나누어 연재하겠다.



  브라, 너 만나고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1) 주니어 용 브라, 불행의 서막
처음 브래지어를 접했던 날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인생 첫 브라가 동네 대형 마트에서 엄마가 사다 준 하얀색 주니어 용 브라(스포츠브라처럼 생겼다)였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순면으로 된 주니어 용 브라를 착용해본 이들(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은 알겠지만 정말 족쇄가 따로 없다.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답답함은 둘째 치더라도, 땀이란 땀은 족족 다 흡수해서 몸을 더 조이고, 끈적하게 만드니까. 주니어 용 브라가 없었더라면, 내 브라 인생은 조금 나아졌을까.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레 끈이 있는 브라를 하게 됐다. 종종 남자아이들은 뒤에서 끈을 잡아당기고 도망갔고,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은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걔가 너 좋아해서 그래’라는 말을 했다.


2) 가슴을 가리라 하여 가렸는데, 가슴을 가리라 하여 가린 것까지 가리라고 하시면
중학교에 가면서 후크가 있는 브라에 입문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괜한 뿌듯함과 으쓱함도 잠시, 여름이 다가오면 학생주임 선생님들, 선도부와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특명, 브라를 가려라! 상체의 반을 통째로 감싸는 주니어 용 브라보다는 나은 듯했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후크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우리는 가슴을 가리기 위해 브라를 입고, 그 브라를 가리기 위해 민소매 혹은 반팔을 입으며 속이 비치는 얇은 하복으로부터 브라를 사수해야 했다. 몇몇 타 학교 친구들에 따르면 흰 반팔을 입기 위해서는 브라 위에 민소매까지 입는 것이 필수인 학교들도, 속옷이나 민소매, 반팔 등 이너 색깔에 규정을 두는 학교들도 있었다고 한다. 몇 겹을, 무슨 색을 껴입든 간에 속옷이 비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우리는 찌는 듯한 폭염에도 몸을 감싸야했다. 내가 학생일 때엔 지금처럼 에어컨을 잘 틀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여름이면 미칠 것만 같았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있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반은 화장과 짧은 치마 때문이었지만 반은 브라, 아니 가슴을 가린 브라를 제대로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게 나를 의아하게 했다.




3) 독서실 앉자마자 후크 풀어본 사람 접어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있었는데, 입시 스트레스가 쌓여서인지, 사춘기의 호르몬 때문이었는지 아토피가 점점 심해지던 참이었다. 그렇게 다시 더운 여름이 오면 전쟁이 시작됐지만 교문 통과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학생회라서 잡힐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중학교 3년 동안 단련이 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겪어도 여름철 더위의 밑 가슴 땀은 적응되지 않았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찝찝하고 간지러웠다. 긁으면 상처가 나고, 진물이 났다.

매 여름마다 이 사이클을 반복하며 의문을 가졌다. 뭘 위해서 이걸 매일 입고, 불편함을 느끼고, 긁고 있는 걸까. 매일이 스트레스인 시기에 도대체 왜 브라에서까지, 상처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걸까. 브라가 나를 옥죄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조금 덜 긁었더라면(애초에 브라를 하지 않았을 때엔 긁지도 않았던 부위다. 내 아토피는 접히는 부위에 말썽을 일으켰으니까.), 밑 가슴의 답답함과 간지러움, 흉터에 덜 신경 썼다면 수능을 그렇게까지 망하지 않았을 텐데 싶다. 핑계 같다고? 독서실 자리에 앉아 커튼을 치자마자 후크를 풀었던 건 결단코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4) 편한 노와이어 vs 섹시하지 않아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 와이어 브라를 구매하게 된다. 차이는 고작 와이어의 유무뿐이었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했다. 가슴을 억지로 잡아두는 철사가 없어서였는지, '노와이어'라는 이름이 주는 플라시보 효과까지 더해져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노와이어 브라 전도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에 길들여진 20대 초반 친구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가슴이 쳐진다, 섹시하지 않다, 할머니들이나 입는 거 아니냐는 둥 저마다의 이유였다. 분명 내 브라에도 레이스(레이스가 없으면 섹시하지 않은 것인가, 브라가 주는 섹시란 무엇인가, 우리는 섹시해야 하는 것인가, 섹시란 무엇인가)가 달려있었고 고작 친구들 것과의 차이란 와이어가 없는 게 전부였음에도. 아직도 의문이 든다.

몇 년, 아니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슴은커녕 브라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했던 우리들의 세계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누군가는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상의를 입고 다녔고, 누군가는 형형색색의 끈으로 브라의 위치를 알렸다. 시스루 패션의 유행은 흰 셔츠와 검정 브라를 유행시켰다. 그렇게 ‘더 잘 보이게, 더 볼륨 있게!’를 찾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그동안 학습해온 이성에게 매력적인 스타일에 부합하고자 노력했고, 그런 시선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애썼다.

뽕브라 그 이상의 왕뽕브라를 찾는 친구들이 늘어나는 와중 나는 노와이어로도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을 조금 큰 사이즈 브라로 해결하기로 했다. 밑 가슴둘레가 나보다 한 단계 더 큰 브라를 입으며 해방감 비슷한 것을 처음 느껴봤다. 그때 브라렛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걸 구매하지 않았을 테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밑 가슴의 간지러움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가슴팍을 전보다 조금 덜 조인 것뿐이지 여전히 가슴 언저리에서 나를 괴롭혔으니까. 재밌는 것은 이때까지 나는 엄마가 사주는 속옷을 입었다는 것. 한 번도 내 사이즈를 재러 속옷 가게에 가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5) 왕뽕 브라의 유혹
이후 친한 언니들과의 여행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속옷을 사게 됐다. 그곳은 캐나다의 유명 속옷 가게였는데, 가리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레이스가 잔뜩 달려있었다. 내가 그런 걸 입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민망하기도, 또 한 편으로는 입어보고 싶기도 했는데 가장 큰 걱정은 ‘엄마가 이걸 보고 뭐라고 할까’였다. 발랑 까졌다고 욕먹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내 가슴 사이즈를 알게 됐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퍽 다른 사이즈에 충격을 받았다. 2차 성징이 다 끝난 이후에는 가슴을 모아주는 속옷을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태어나 처음 간 속옷가게에서 태어나 처음 듣는 알파벳이 내 가슴에 붙는다는 게 어색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괜히 그 사이즈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결심했다. ‘한두 개쯤은 왕뽕브라가 있어도 될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내 사이즈에 꼬옥 맞는 왕뽕 브라를 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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