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몸] 때, 밀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LOVBOD  ·  02.15.2021

  두유 노 K-때타월?

시원한 국물부터 시원한 때밀이, 시원한 안마, 시원 털털한 성격까지.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그리도 ‘시원함(Cool 아님)’에 열광하는 걸까. 시원함 없이 못 사는 한국인이자 누구에게도 질 수 없는 시원함 러버였던 나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K-때타월을 챙기곤 했다. 길게 머물러야 할 때에는 1+⍺개씩 가지고 다니곤 했는데, 당연하게도 하나는 내 것이었고 나머지는 선물 용이었다. 그건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누군가를 친구로 만들려는 수작, 그리고 순수한 선물 그 중간 즈음의 물건이기도 했다. 내 때수건들은 이태리에서는 절대 팔지 않는 초록색 이태리 타월 대신 꽤나 귀여운 동물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나름의 포인트였다.

외국(특히 서양)에는 때를 미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부분 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문화 홍보대사가 된 마냥 종종 ‘때밀이의 시원함’을 소개하곤 했다. 경계하던 친구들은 때를 밀어보고 난 뒤에는 온종일 ‘때타월’에 대해 물었다. 어디에서 파는지, 이 신기한 타월을 더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나라에서도 구매해 쓸 수 있는지(지금처럼 이커머스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우리가 나눈 시원함과 보드라움에는 국경도, 언어의 장벽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세계 통합을 내가, 그것도 ‘K-때타월’로 이룬 것이다. 그것도 BTS가 등장하지 않았던 몇 년이나 전에.



때밀이 딜레마


그랬던 시절도 잠시, 지구 반대편의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전처럼 때를 밀지 않게 됐다. 대신 아주 가끔 가벼운 스크럽만 해주는 정도다. 원체 피부가 얇고 예민해서 겨울을 제외하면 2~3주에 한 번 각질을 제거해줬는데 언젠가부터 아무리 관리를 해도 피부가 예전만큼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각질을 없애겠다고 더 열심히, 더 자주 때를 밀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질이 더 많이 일어났다. 밀면 밀 수록 나를 매혹시켰던 시원함은 사라졌고, 가끔은 따끔거리기도 했다.

남은 건 벌게진 피부 뿐인 나를 발견한 후에야 애써 무시했던 때밀이의 이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는 하얀 각질이 나올 때까지 때를 밀었는데, 알고 보니 하얀 건 각질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표피층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그제서야 각질 제거 대신 시원함이 목적이 되어버린 n 년 차 때밀이 인생을 반성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전문의들은 오래 전부터 입을 모아 피부에 되려 악영향을 미친다며 때밀이를 극구 말리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딜레마에 빠졌다. ‘온몸의 각질들이 하얗게 일어나거나 검게 변하면 어쩌지, 더러워 보이면 어쩌지. 피부과 의사들은 자신의 거뭇한 팔꿈치를 그냥 보고만 있는 건가, 아닌데, 여태 한 번도 검은 팔꿈치의 의사는 못 본 것 같은데.’



쌓인 각질도 다시 보자


나의 때밀이 딜레마는 각질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됐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처럼 각질을 단지 더러운, 그래서 빨리 없애버려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사람의 피부는 겉에서부터 표피와 진피, 피하지방층의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때밀이로 영향을 받는 부분은 단연 가장 바깥에 자리한 ‘표피’다. 이때, 각질은 피부 내부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면서 바깥으로 밀려난 오래된 세포들로, 아주 견고하게 짜여져 외부로부터 세균이나 이물질이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튼튼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몸 속 수분이나 중요 성분이 밖으로 소실되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도 하게 되는데, 때밀이가 이렇게 건강한 피부를 위한 필수요소인 각질층을 제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각질의 순기능은 알지도 못한 채, 시원함에 눈이 멀어 피부 보호막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때를 평생, 절대 밀지 말라’고 주장하는 의료진 중 한 명인 서울대병원 피부과 정진호 교수는 2009년, 연구실 인턴들과 살신성인 정신을 발휘해 ‘때를 미는 습관은 피부에 나쁘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인턴들은 4주 간 주 1회씩 서울대병원 근처 목욕탕에서 오른팔과 오른 다리 때를 밀었고, 이후 1, 3, 6, 24시간 ~ 3일, 7일 후의 피부 변화를 관찰했다. 결과적으로 때를 민 오른 쪽은 탄력도가 20% 감소, 수분 함량은 10% 감소했으며, 약산성을 띄어야 할 피부가 알칼리성으로 변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수치로 확인하니 꽤나 충격적이다.

결국 때밀이는 각질층의 재생을 늦춰 수분을 빼앗고, 노화를 촉진시킨다. 그동안 시원함(다시 말하지만 cool 아님)이라는 통각에 속아 피부 노화 시기를 몇 배나 앞당긴 것이다. 서양에는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사는 벤자민이라는 남자가 있는 반면, 한국의 때밀이 러버들은 저 먼 미래를 향해 버선발로 마중까지 나간 셈. 그것도 아주 저마다의 전속력으로 말이다. 때밀이를 멀리하는 게 가장 최선이겠지만, 이미 때를 민 후라면, 잠깐의 시원함과 맞바꾼 탱탱함과 촉촉함을 위해서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보습에 신경써주어야 하겠다.



때, 그래도 밀어야겠다면?

1. 미지근한(37°C) 물에 5~10분 정도 몸을 불린다. 이때 너무 오래, 혹은 너무 뜨거운 물에 들어가게 되면, 피부 겉면의 천연 유분막의 손상으로 수분을 빨리 증발시켜 건조증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주의한다.
2. 피부 결을 따라 살살 마사지하듯 균일한 강도로 밀어준다.
3. 회색 때가 나올 때까지만 밀어주고, 만약 흰색 때가 나온다면 당장 멈춘다.
4. 때밀이가 끝난 후에는 충분히 보습제를 발라 건조해진 피부에 두터운 수분보호막을 형성해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피부를 코팅해준다.
5. 피부가 건조해지기 쉬운 겨울철에는 가급적 때밀이를 피하고, 여름에는 한 달에 한 번이, 그 외에는 3~4개월에 한 번이 적당하다.



다, 때가 있다

의학적으로 때밀이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럼에도 때를 밀어야겠다면 명심하자. 때밀이를 벅벅(이든 박박이든 쓱쓱이든) 각질을 인위적으로 탈락시키는 행위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피부를 불리고, 충분히 보습제를 바르는 전후과정까지 포함해 때밀이를 재정의 하는 건 어떨까. 이런들 저런들 때밀이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고, 또 지성인들에게는 여드름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건강한 피부보호막까지 함께 제거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각자의 피부 상태에 맞게, 대신 충분히 피부를 불려주고 이후 보습에 신경 써준다면 더 부드럽고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악건성이거나 아토피, 혹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되도록 때밀이를 피하는 게 좋다. 또한 당뇨병이나 고혈압, 림프종, 신장병이 있어도 때밀이에 신중해야 하는데, 이는 자칫 건성 습진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굳이 때를 밀지 않아도 우리에게 시원함을 선사해줄 것들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 시원함은 때밀이를 제외한 다른 것들에서 만끽하도록 하자. 신경쓰이는 각질들은 어떡하냐고?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출처 및 참고자료

개운한 때밀이의 불편한 진실 / 장세영 / 조선일보 / 2009.06.22
‘긁적긁적’ 가렵고 건조한 겨울 피부 관리비법 / 강진수 / HiDoc / 2013.11.26
때 밀면 밀수록 왜 많이 나올까? / 김하윤 / 헬스조선 / 2016.01.08
때 밀면 피부 매끈해질까 거칠어질까 / 배지영 / 헬스조선 / 2009.05.05
때 밀면 피부 보호 안돼… ’이런 사람만 한 달에 한 번 밀어야’ / 한희준 / 헬스조선 /2019.04.11
목욕탕에서 때 밀고 피부 수분량 측정했더니… / 이금숙 / 헬스조선 / 2011.01.06
피부 손상 안 시키는 건강한 ‘때밀이 법’ / 이해나 / 헬스조선 / 2017.06.23
피부 해치지 않으면서 시원하게 때 미는 방법 / 한희준 / 헬스조선 / 2019.05.16
‘한국식 때밀이’ 정말 좋을까 / 홍세정 / 헬스조선 / 2007.04.24
[스마트 리빙] 하얀 때까지 벗겨 내면 피부 염증 생겨요 / 노송원 / mbc 뉴스투데이 / 2019.09.24
절대로, 평생동안 때를 밀어서는 안됩니다. / 서울대학교병원 / 서울대학교병원 네이버 포스트 / 20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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